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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다.

빛도 없다.

 

형체도 없다.

 

공허라고 하는 이름조차, 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이 소녀를 둘러싼 세계였다.

 

돌아가야 할 장소.

 

가야할 길.

 

지금 머물어야 할곳.

 

무엇하나 그곳에는 없다.

 

그렇지만---.

 

소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당연하다.

 

이제, 전부 끝났으니까.

 

소녀는 해야 할 일을 끝냈다.

 

투쟁하며.

 

발버둥질치며.

 

피를 흘려가며.

 

마침내 이뤄낸 것이다.

 

소녀에게 자아의 조각조차 더 이상 필요 없다.

 

큰 성취감을 안고,  무(無)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왜?

 

소녀는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소녀에게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물을 머금은 붓의 브러쉬 처럼.

 

누구의 눈에도 닿지도, 지문을 남기지 않고.

 

볼 수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

 

침묵속에서 거품처럼 사라져가는 덧없는 것이다.

 

더이상 소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의 미래.

 

어떨까---.

 

행복할까---.

 

그러나 소녀는 알고 있다.

 

자신에게 그것을 바라는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빨리 무(無)로 돌아갔으면.

 

그런데…….

 

어째서.

 

설마---.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일까?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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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를 적시는 바다의 물보라와.

 

시야를  넓히는 하얀 햇빛.

 

바다 위다.

 

치카네는 자신을 바다로 떠 내려보낸「 여덟개로 쌓은 관 」을 싣은 배를 타고있는 것을 안다.

 

여기가---.

 

지식으로는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 끝 정도도 믿지 않았었다---.

 

「저 세상」일까?

 

예를 들면---.

 

삼도천.

 

레테의 강.

 

바다의 저 멀리 있다고 하는 불로불사의 나라.

 

죽음과 삶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 물은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이니---.

 

그곳에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럴리가 없다.

 

심장의 고동이.

 

신체를 뛰어돌아다니는 피가.

 

치카네의 생이 확실히 여기에 있는 것을 고하고 있다.

 

왜?

 

분명 치카네는 죽었을텐데.

 

「하텐코」―――오로치(神)의 공물이 되었을 것인데.

 

왜?

 

하늘이 이끈 기적인가?

 

사악한 운명의 변덕인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꾸몄는지?

 

―――왜.

 

코우즈키의 가의 짓?

 

오로치?

 

오토메미야쿠?

 

전부 아닐 것이다---누구에게도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누가?

 

치카네는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배에 강한 물결이 부딪혀 온다.

 

원래, 제물을 오로치(神) 앞으로 보내기 위해 가라앉아야 할 배. 신성한 배이다.

 

구름이 하늘을 가려, 순식간에 햇빛은 흐트려져 간다.

 

수평선의 저 편으로, 검은 덩어리가 보인다.

 

내뿜어 오는 것은 은은한 열기를 내포한 바닷바람.

 

이것이 뭔지 치카네는 알고 있다.

 

폭풍우가 온다.

 

바람과 파도와 비가, 이번이야말로 치카네의 생명을 가져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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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쿄.

 

인파와 소음 소리로 가득 찬 대해를,

 

치카네는 헤엄치는 것 처럼---걷고 있다.

 

무녀복이 아니다.

 

큰 사이즈의 흰 블라우스와 단색 스커트, 그리고 펌프스 힐.

 

왠지 한번도 입지 않은듯한 옷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입고 온 것이다.

 

또래 여자아이들의 화려한 조각은 없지만.

 

치카네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쳐내는 무언가가,

 

눈길을 끌지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신기한 눈.

 

동경의 눈.

 

호기심의 눈.

 

그 시선의 모두가, 치카네와는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해도.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좋은 일이다. 소란스러워지면「은신」으로 어떻게라도 하면 된다.

 

―――정말 이게 내 자신의 모습일까. 이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진 않다---.

 

아주 조금 전이라면, 그렇게도 생각했을 것같지만,

 

이제, 더이상 관계가 없다.

 

치카네는 생각한다.

 

난, 유령이 아니면 무엇일까?

 

죽지도 않았다. 살아 있을 의미도 없다.

 

라고---.

 

치카네는 정처없이 단지 방황만 한다.

 

사색의 물레는 허무한 소리를 내며 계속 둘러싼다.

 

잠들어야 할 무덤도.

 

바라보던 저승도.

 

약속된 장소도.

 

오로치(神)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 제단도.

 

가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왜, 이대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살아남은 것일까?

 

왜, 본토에 쓸려 닿아 버린 것일까?

 

왜, 섬으로 돌아갈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것일까?

 

왜, 도쿄에 돌아와 버린 것일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거리의 대형 TV로부터 방송되는 뉴스를 멍하니 보고있다.

 

섬의 보도는 나오지 않는다.

 

오로치(神)의 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식이 희미했으니까 그것으로 진정이 될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을 뿐 멸망하고 있는걸까?

 

어린시절부터 반복해 들어 온 말.

 

하늘이나 산처럼, 거기에 있는 확고한 사실로 들어 온 것.

 

그것이---.

 

섬의 멸망.

 

만약 그렇게 되면---.

 

히메코는.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할지?

 

모습을 보이며 구해낼지?

 

비록 옳은 선택이 아니더라도.

 

한번 더, 오로치(神)를 위해 죽임을 당할지라도.

 

이렇게, 열심히 뽑은 생각의 실은 어디에도 연결하지 않았다고,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해도말이다.

 

그런 일은 이젠 조금도 상관없다.

 

비록 그 아이의 근처에, 그 불쾌하기 짝 없는 남자가 있더라도---.

 

반드시---.

 

그런 일을 생각하는 치카네는, 자신은 비웃는다.

 

―――번거로운 「유령」이내---.

 

치카네는 계속 방황하고 있다.

 

도착 장소는 아직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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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네는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층건물의 작은 목조 아파트.

 

불 빛이 없는 방, 202호실.

 

그곳은, 히노미야 히메코가 살고 있었던 방.

 

기쁨, 슬픔.

 

희망, 절망.

 

시작과 끝.

 

치카네에게 있어서 모든것이 여기에 있다.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치카네」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비록 이 문의 저 편이, 어떻게 되어 있던.

 

무엇하나, 변함없어도.

 

무엇하나, 남아 있지 않아도.

 

그것 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근처에 「구사란」의 기척은 없다.

 

남아 있던 치카네의 방과는 달리, 이젠 소용없지만 「처분」은 끝나 버린 것일까?

 

그게 아니면---.

 

치카네의 손이 문에 다가간다.

 

누군가의 침입은 허락 하지 않는다. 허락 할 생각도 없다.

 

이런 싸구려 자물쇠를 푸는건 치카네에겐 장갑을 벗듯 푸는 물건이다.

 

이젠, 호흡도, 마음도 하나 하나 물결치진 않는다.

 

「열」도 「결의」도 모두 끝난 것.

 

끝나 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치카네는, 추억의 땅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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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하나, 바뀌지 않았다.

 

중고품을 모은 일상 생활 용품.

 

벽에 걸린 교복까지.

 

아로마향을 담은 작은 병이 놓여진 선반.

 

히메코가 「고양이의 산책」이라고 이름을 붙인 천정의 얼룩.

 

스티커 사진으로 빈틈없이 채운 꽃병 대신에 사용한 머그 컵.

 

모두가 그 때와 같다.

 

당장 목욕탕의 문을 열면, 히메코가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다.

 

봄의 은하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꽃밭 향기에 감겨.

 

홍차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울리며.

 

"또 기다리게했지, 치카네 쨩."

 

문득---그런 식으로 착각해 버릴 정도로.

 

여기는 설탕으로 만든 성.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짝퉁의 낙원.

 

치카네는 「유령」일텐데....

 

그때 치카네의 눈이, 문득 선반에 놓인 소품 하나에 멈춘다.

 

둥근 유리병.

 

저건---.

 

「보물단지」.

 

치카네가 히메코에게 보낸 딱딱하게 구운 쿠키.

 

"아까워서, 먹을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히메코는 웃고 있었다.

 

그 투명하지만, 그래서 농밀한, 달콤한 시간.

 

낡은 사진과 같은, 세피아색의---.

 

먼 먼 기억.

 

아니, 그렇지 않아.

 

치카네는 생각한다.

 

저건 정말 이 세상에 있던 것일까?

 

빗속에서 흐느껴 울고있던 그 소녀.

 

내던지는 빗속에서도, 분명히 전해져 온. 그 눈물의 뜨거움.

 

어슴푸레한 방안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본 새콤달콤한 비디오.

 

그 아이에게 안겨 있는것 같이 느꼈던, 꽉 낀 잠옷.

 

모두, 환상이었던게 아닐까.

 

라고---.

 

치카네의 손이 병뚜껑을 연다.

 

콧구멍을 간질이는 것은 계피와 벌꿀 냄새와

 

그 소녀의 향기.

 

치카네는 문득 깨닫는다.

 

아직 무언가가 들어 있다.

 

쿠키 이외의 무엇인가가.

 

치카네의 손끝이, 그것을 꺼낸다.

 

그것은 단단하게 꺾어 접혀진---종이조각?

 

한개가 아니다. 몇장이 들어가 있다.

 

치카네의 손끝이, 그 하나를 연다.

 

이 감촉, 이 페이지의 모양, 춤추고 있는 둥근 글씨체.

 

기억난다.

 

이것은 히메코가 들고있던 수첩의 페이지이며.

 

히메코가 쓴 문자다.

 

그러고 보니, 그 날 본 수첩의 페이지 끝에는 찢어 버린 흔적이 있었다.  

 

확실히 있었다.

 

설마……이건.

 

치카네의 눈동자는, 일심 불란에 문자를 읽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 리리아나 2012/10/17 00:42답글38편을 읽어보면 찢어진 부분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참고하시길.

    어떤 글이 적혀있으며,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치카네와 히메코는 이어진다는 이야기!!!!!!! 

    누가 기사가 될지, 누가 공주님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인거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처럼 공수역할이 바뀔수도 있는 노릇이고.... 기다린 보람은 있군요.
  • HTT지니 2012/10/17 20:43답글아,,,궁금하네요 ㅜㅜ
    다음편을 또 기다립니다,,,,
  • 리리아나 2012/10/17 23:52답글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나와줬으면 하는군요 ㅋㅋ
  • 레밀리아 2012/10/17 23:16답글지금에서야 50편까지 다 읽었네요
    확실히 찢어진 부분이 있다구 했었으니 ㅎㅎ
    그리고 둘이 이어진다니 잘 됬네요~
  • 리리아나 2012/10/17 23:52답글무조건 이어질겁니다!!! 저의 백합 최애커플인만큼!!!
  • 쁘띠꼬숑 2012/10/18 01:04답글치카네........................................................
    다른건 몰라도 ;ㅅ; 너능 좀 행복해야 한다는!!!!!
  • 리리아나 2012/10/18 18:48답글빨리 소마가 죽었으면....ㅋ
  • new5o5 2012/10/19 08:29답글1화부터보고있어요! 아진짜해피엔딩이길
  • 리리아나 2012/10/19 23:23답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타락천사 2012/12/21 00:10답글 | 수정 | 삭제군입대 후 미처 확인 못한새에 많이 올라왔네요!
  • 리리아나 2012/12/21 00:36답글거의 끝을 달리고 있죠 ㅎ
  • 천유화 2013/12/07 13:10답글하아...이제히메코 시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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